카테고리 보관물: 미분류

7월 23일 2025

그리울 도쿄를 떠난다. 정감 안 가던 도시가 마음 속으로 다가오기까지. 역시 사람이 중요하다. 음, 멀고 험한 길도 가볍고 편한 길도 섞어가며 가야겠다 다짐했다.

한국에서의 스케쥴이 바쁘다. 만나자는 사람들은 많은데 만나고픈 사람은 정작 연락이 없다. 이쯤되면 순서가 바뀐 구조인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허나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난 그저 할 일을 지속해서 할 것이고 때가 되면 하나둘씩 만나겠지. 그것만큼 정당한 방법이 없다.

물질적으로 받았던 것들은 시간이 지나며 망각된다. 항상 식사를 사준 사람은 100만원어치를 기억하지만 받은 사람은 한 30-40만원 어치인 줄로 기억하능 것이다. 잘 기억하는 이들도 있지만 많은 것들은 익숙함, 더 우선 순위인 것들에 대한 집착으로 묻혀간다.

사랑의 성질은 조금 다르다. 항상 사랑을 준 이는 그 마음에 대해 미련이 없지만 잘못을 저질렀거나 받는 쪽에 있으면 시간이 지나며 증폭되는 것이다. 뒤늦게 깨달은 것들은 줄곧 더욱 미화되고 녹아내려 기억의 빈자리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마음이 그렇게 무겁고 아름다운 것이다.

시간에 대한 통찰이 있는 이들은 줄곧 그때그때 솔직한 표현을 하려고 한다. 이때 솔직함이란 것은 직설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미련을 덜 할 언행을 선택하고 상대와의 관계를 고려해 이로운 표편을 하려고 한다. 사려깊은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더욱 잘 설계된 화살촉을 상대에게 꽂을 수 있다. 뽑으면 출혈이 심할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은 뽑기가 어려워 상대는 줄곧 화살을 맞은 채로 살아가게 된다.

어떤 나날

정적이 흐른다.

색에 집중하면 주변이 고요하다.

한번 싸움이 끝나면 음악이 크게 들려온다.

춤을 추고 지칠 때쯤 다시금 조용해진다.

무언갈 찾는다.

자꾸만 담배를 찾고 자꾸만 사람을 찾는다.

담배는 가벼우나 사람은 그게 아니라 담배를 무거울 때까지 피곤 한다.

몸이 아픈 것이 가장 싫으나 그만치 삶에 절실할 시기도 없다.

친구들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나

난 배려랍시고 자꾸 입을 연다.

그게 싫어 또 작업실로 향한다.

푸른 것이 안타깝다

경호 어머니가 보내준 시래기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국그릇에 밥을 좀 퍼놓고 국자로 국과 건더기를 얹는다

먹다보면 밥이 불어 국물이 없다.

밥이고 내 몸 상태와 관계없이 창밖이 아름답다.

세상은 자연스레 흘러가는데 내가 시기를 나누었다.

계절을 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들을 했다가 고이 접고선 작업실에 나갔다.

따뜻함

다시 어린 아이가 되었다.

아련함, 여운이라 부르는 것들이 찾아들어 치유하는 것이 있다.

굳어버린 것들은 부드러운 것이 필요했다.

원하는 것이 없을만도 했다.

원하게끔 만든 과거들이 존재했을 뿐.

강을 건너 씻고 나오면 채취가 사라진다.

거뭇거뭇한 자국들을 벗겨낸다.

기록 15

나는 과잉이다.

스스로가 힘들다고 여긴다.

가끔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꼈지만 그에게 내 자신이 죄악이라 생각했다.

사랑받고팠던 암세포였다.

결핍은 과잉을, 과잉은 변이를 만든다.

단추가 잘못 끼워진 삶은 배울수록 죽음을 옳은 일이라 여기게끔 한다.

식구, 의리, 사랑 등의 신념은 그런 내게도 지키고픈 가치였지만

매번 존재의 성찰을 하며 그릇된 방향을 바로 잡아야했다.

자연히 발현된 영웅이 아닌 나는 내 세계 하나를 바로잡지 못하였다.

아쉬움

다 지나가겠지 하고 쳐다보면 아직이다.

생애가 짧을 거란 것을 직감한다.

그러니 새로운 끈을 잇지 못한다.

매듭짓지 못할 약속도 안 하기 시작했다.

거창하게 세워놓은 기둥들이 무너진다.

다 끝났다.

영화관에서 배 위에 손을 올려주던 소녀가 생각난다.

이젠 다 끝이 났으니 나만의 기억으로 남아있겠지.

건강하지 못해 이룰 수 없던 꿈도 사랑도 보내준다.

오늘뿐이었으랴.

나뿐이었으랴.

게으르던 10대, 20대의 어느 시절처럼 매일을 누워있을 날이 곧 올 거다.

세상 순리가 업보라면 난 참 못되게도 살았나보다.

본인 삶에 관대한가

제 삶에 관대했는가 엄격했는가를 두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아무래도 그렇게 나눌 문제가 아님을 느꼈습니다.

다만 어리석었음은 확실한 것 같아요.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어리석음은 죽고난 뒤에 줄곧 소멸된다는 점이에요.

삶에서 너무 어리석었다면 그 이후에는 조금 깨닫고 개운할테니 너무 걱정하지 맙시다.

병원에 다녀온 날은 정신이 아득합니다.

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제 자신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제가 목놓아 부르면 앞서간 제가 뒤를 돌아봅니다.

뒤를 보며 괜찮다고 웃어줍니다.

안심하며 눈을 살며시 감았다가도 어지럽고 토할 거 같아 다시 현실을 마주합니다.

날씨가 좋아졌어요.

누군가들은 꽤나 전부터 그 소리를 해왔다만 전 오늘에야 느꼈어요.

작업실의 겨울은 몹시 추웠답니다.

허약해진 덕분에 온풍기를 틀어도 손이 떨어질 거 같았지요.

오늘은 그렇지 않았고, 그림에서 봄이 보였어요.

자화상을 그렸을 뿐인데 봄이 왔어요.

내가 원하던 작업방식이기도 합니다.

바보가 따로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리고 그리면 어느 순간 뭔가 묻어있는.

언제쯤이면 다시 술을 마실 수 있을까요.

겨울엔 겨울이라 술 생각이 났는데 봄이 오니 또 술 생각이 나네요.

종점 전 정거장에서 종점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기분입니다.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은 전혀 이유도 기분도 상상되지 않을 것이죠.

사실 저도 경험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