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도쿄의 햇빛은 열심히 정돈된 머리도 밀짚모자를 쓰게 만든다. 밖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도저히 숨이 안 쉬어져 카페를 찾게 된다.
다이토구에서 신주쿠구로 숙소 이동을 하는 날이다. 체크아웃 시간과 새로운 숙소의 체크인까지 6시간 정도가 뜬다. 일찍 도착했지만 숙소에 짐을 맡길 수가 없어 근처 카페에 들렸다.
오일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면 물감 생각이 난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캔버스 생각이 나고 그렇다. 사실 이런 것들은 반대로도 적용된다. 무언가를 그리는 일만 그럴까. 삶에서 느끼는 많은 것들이 권태와 안정을 왔다갔다 하며 변화를 만든다.
말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한다. 들뜬 기분엔 어떤 소리던 쏟아내곤 했다. 나이를 먹으며 꽤나 과묵해졌지만 생각이 조용해진 것은 절대로 아니다. 처세와 체력의 문제일 것이다. 나는 이것이 성숙의 차원이라 여기지 않는다. 다양한 색채를 가진 것은 호기심이 많은 어린 아이뿐만이 아니다. 단조로워지는 노인의 삶에는 덮어씌워진 흔적들이 존재한다. 아무도 긁지 않아 겹겹이 쌓은 레이어가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나의 경우엔 그 레이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외로운 덧붙힘을 드러내지 않아도 덧칠한 자국은 마음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담뱃불을 꺼뜨리며 줄곧 집을 그린다. 내 눈엔 선명히 보인다. 그립다 집이. 어린 시절의 집 말고는 깊이 그리워해본 적이 없다.

배가 아픈 것이 참 고통스럽다. 순리였음을 납득하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고통 앞 나약해지는 자신이 싫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건강문제에 대해선 아무도 공감해줄 수 없음을 알고는 혼자가 되어버린 어린 아이가 보인다.